[독서이야기] 3. 《감정의 발견》 (마크 브래킷) - 내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시간

 

솔직히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내용이 어렵고 낯설었다. 평소 가볍게 접하던 실용서나 에세이와는 결이 달라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싶은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문호 박사 같은 전문가들이 왜 이토록 깊이 있는 독서와 자연과학적 사유를 강조하는지, 조금씩 그 결을 더듬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마크 브래킷 《감정의 발견》 을 읽고- 내 안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시간

최근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느껴졌던 내면의 아픔과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안고, 이번에는 예일대 감정지능센터 센터장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Permission to Feel)》을 펼쳐 들었다. 문학이 인간의 깊은 상처를 조용히 다독여준다면, 이 책은 뇌 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보듬고 다스려야 하는지 명쾌한 길을 제시해 준다.


1.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허락하는 것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을 울린 구절은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하라(Permission to Feel)"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은연중에 화, 불안, 슬픔 같은 감정을 나쁜 것, 혹은 숨겨야 할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감정에 옳고 그름은 없으며, 단지 내 상태를 알려주는 유용한 '신호'이자 '에너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려 할수록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과부하 상태에 빠지고, 결국 몸과 마음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2. RULER 법칙과 '감정에 이름 붙이기'의 힘 

책에서 소개하는 감정 조절 5단계 모델인 RULER 법칙은 매우 현실적이고 명쾌했다.

  • Recognize (인식하기):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차림

  • Understand (이해하기):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원인을 파악함

  • Label (이름 붙이기):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정확하게 정의함

  • Express (표현하기): 감정을 건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함

  • Regulate (조절하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생산적으로 조절함

이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단계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Labeling)'였다. 그동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저 "짜증 난다"거나 "기분이 안 좋다"처럼 모호하게 뭉뚱그려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서운함'인지, '억울함'인지, 혹은 단순히 '피곤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체적인 단어로 포착하는 순간,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면서 편도체의 흥분이 가라앉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힘이 생긴다. 모호했던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뇌가 안정을 찾고 마음이 정돈된다는 점은 거대한 깨달음이었다.


3.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거대한 우주나 생명의 원리, 혹은 인간의 뇌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마주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당장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만드는 단단한 사유의 근육이 조금은 붙은 기분이다.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낯선 지식과 씨름하며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는 소중한 취미 과정이다. 오늘도 책장에 꽂힌 무거운 책 한 권을 완독해 내며, 나의 소소한 일상 속에 또 하나의 지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본다.

한강 작가가 고통받는 인물들의 내면을 나지막이 다독여주듯, 마크 브래킷 역시 내 안의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뇌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임을 일깨워준다. 감정을 무조건 참거나 발산하는 대신, "내가 지금 왜 이런 기분을 느낄까?" 하고 따뜻하게 물어봐 주는 태도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앞으로는 일상에서 갑작스러운 감정이 밀려올 때 억지로 누르려 하지 않고, 먼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려 한다. 내 감정에 정성껏 이름을 붙여주고 조율해 나가는 습관을 통해 마음과 뇌가 모두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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